성경(Spititual Nourishment & Faith)/생명의 식탁(Table of Life)

[큐티노트] 2025-03-17 (월)|누가복음 16:1-13|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김양재 목사

uncle-bob 2025. 3. 17. 10:17

 

(21) [큐티노트] 2025-03-17 (월)|누가복음 16:1-13|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김양재 목사 - YouTube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큐티인 말씀은 누가복음 16장 1절에서 13절까지예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첫째, 주인의 소유를 낭비합니다.
오늘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부자의 청지기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른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지요. 청지기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집안일 전반을 돌아보며 다른 종들을 감독하는 이른바 집안 살림 책임자예요.
그런데 1절에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고 시작되는 걸 보면 청지기가 자기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결국 주인은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고 하죠. 하던 일을 중단하고 회계 장부를 완전히 양도하라는 것이죠.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요즘 말로 짤릴 지경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청지기가 어떻게 처신 합니까? 주인 앞에서 잘못했다. 회개하고 용서 구할 생각은 안 하고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하고 신세 한탄부터 합니다. 그러다가 4절에 보니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며 잔꾀까지 부립니다. 짤린 후에도 먹고 살 길을 마련하느라 수작을 부리는 거예요.
5절 이하를 보니까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기름 100말은 50으로 밀 100석은 80으로 감해줍니다. 여러분 이게 주인이 시킨 일입니까? 왜 자기가 맘대로 감해주죠? 주인한테 쫓겨나는 마당에 빚진 자들에게 선심이라도 써서 나중에 대접받으려는 속셈이 딱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어떠세요. 

 

[적용]
돈이든 시간이든 건강이든 다 내 것이냥 내 맘대로 낭비하고 허비하지는 않나요?

자식이고 배우자고 부모고 형제고 다 잘 지키고 섬겼다가 하나님 품으로 돌려드려야 하는데 나 몰라라 하고 있지는 않나요?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둘째,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합니다. 
8절에서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라고 해요.
옳지도 않은데 칭찬합니다. 주님도 그래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덧붙이십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누구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죠. 그런데 그들이 믿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니요. 여러분 이 말씀이 인정되세요. 주인이야 어찌 되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이 청지기나 이 세대의 아들들이나 다 지탄받아 마땅한 자들 아닙니까? 근데 뭐가 예쁘다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청지기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무엇입니까?
비록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기 맘대로 빚을 줄여 주었지만 훗날을 생각했다는 거죠. 앞날을 예비한 거예요. 이 비유의 핵심이 여기에 있어요. 도덕을 잣대로 불의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에요. 준비예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해서 심판받아 마땅한 청지기조차 이렇게 앞날을 예비하는데 명색이 빛의 아들들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9절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해요. 청지기가 빚진 자들에게 자기 맘대로 빚을 감해 준 것은 그 의도야 불순하지만 빚진 자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결과를 낳았잖아요. 이처럼 구원의 관점으로 세상사를 보면 때로는 옳고 그른 것이 없어요.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신 것도 그래요. 여기서 불의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규범의 문제라기보다는 충성의 반대 개념인 불충과 불성실을 의미해요.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일부터 충성하라는 것이죠. 주님은 오늘 청지기가 재물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한 이런 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에게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 아닙니까? 
13절에서 주님은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세요.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이 분명하지만 이것을 하나님 곁에 같이 두고 우상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왜죠? 모세는 내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내 마음이 교만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고 경고하였죠. 잠언에서도 재물은 허무한 것이라고 했고 사도바울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어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재물 많은 부자 청년을 보세요.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어떻게 했죠? 근심하며 갔잖아요. 두 주인을 섬기는 삶의 결론은 결국 주님을 떠나가는 것이에요. 


[적용]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자 우선 먼저 충성해야 할 지극히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재물입니까? 돈 많은 부모 형제입니까? 

 

[묵상간증]
부모님의 다툼과 별거 이혼 소송으로 우울하지만 그 환경을 자기 힘으로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영혼 구원의 사명을 생각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기를 원한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중학생 때 시작된 부모님의 다툼과 별거로 우울해진 저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어요. 그러다 교회에 다니며 믿음의 친구들과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지요. 하지만 매년 꼭 한 번씩은 미친 듯이 우울해졌는데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우울감에 익숙해졌고 좋아하는 소설과 웹툰을 보며 마음을 달랬어요.
그런 저를 내버려 두지 않고 보살펴 준 공동체의 권면에 따라 정신과에 다니며 약도 먹었죠. 그런데 많은 감정을 직면하면서 처방받는 약의 용량도 늘어나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내심 속상했어요. 그러다 작년 새로운 근무지로 옮겨 일하고 있을 때 부모님이 이혼 소송을 시작하셨어요. 저는 점점 더 지치고 우울감도 커졌지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데 제 힘으로 해결하고만 싶어 애를 썼어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를 보니 제 모습 같아 회개하게 돼요.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추가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어요. 힘든 가정 환경이 원망스럽고 이렇게 우울한 내가 믿음의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해요. 10절 말씀처럼 영혼 구원이라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기에 애쓰는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간증적용]

저의 적용은 병원에서 그만 먹어도 된다는 처방을 받을 때까지 약을 꾸준히 먹겠습니다.

선물로 주신 하루에 감사하며 큐티한 내용을 가족의 sns 대화방에 나누겠습니다.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이 있어요.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하나님처럼 섬기다 보면 결국 하나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주님은 이런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재물 그 자체를 받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로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고 구원을 위한 도구로 잘 사용하라는 것이에요. 내 시간과 건강 지식과 재능도 마찬가지에요. 이 지극히 작은 것으로 충성해야 하나님 나라의 큰일에 충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셔도 여전히 재물을 중히 여기는 저희들이에요. 돈이면 다인 줄로만 알아서 돈에 목숨을 걸고 그러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또 모든 것을 잃으면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합니다. 이 시간 이런 빚진 환경 가운데 처한 지체들을 찾아가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이 빚진 환경이 탕자처럼 살아온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쥐엄 열매도 없어서 못 먹는 데까지 온 이 절박한 상황이 하나님의 뜻이고 사랑임을 알게 해주시옵소서. 내 죄를 보는 그 고백만이 빚을 탕감받는 해결책임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힘든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지체들을 충성으로 잘 돌봄으로 더욱 큰 것에 충성하는 저희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